왕비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병이 있었다. 완벽한 무음(無音)의 세상 속에서 그녀 스스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옷깃이 스치는 소리도 나뭇가지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그 어떤 사소하고 작은 소리도 없는 곳에서 왕비는 조금씩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녀는 길고 높은 뾰족한 성의 꼭대기에 위치한 다락에서 털실을 뜨는 일에 몰두했다. 고운 색들의 털실은 그녀의 손 끝에서 모자가 되기도 양말이나 옷이 되기도 했다. 수북하게 쌓인 그 털실로 만들어진 것들은 가장 춥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다락에서 창 밖을 바라보면 먼지덩이처럼 작은 사람들과 말들 그리고 집들이 보였다. 해가 저물 무렵 그녀는 다락에서 내려오는 긴 계단 중간에 잠시 앉아 밖을 내려다보았다. 보라색과 파란색이 섞인 목도리를 한 남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목도리는 그녀가 며칠 전 완성한 목도리였다. 분홍빛 머리를 한 그 남자는 자신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듯했다. 보라색과 파란색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었지만 구하기 힘든 색이었기에 그 목도리를 완성했을 때 그 목도리가 누구에게 갈지 항상 궁금했었다. 그녀는 그 목도리를 한 사람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고 아주 오랜만에 자신이 만든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 몰래 성밖을 나섰다. 오랜만에 나온 탓에 그녀는 추운 겨울 날씨에 덜덜 떨어야 했다. 두리번거리며 떨고 있는 그녀의 어깨 위로 낡은 코트가 걸쳐졌다. 분홍색 머리를 한 그 남자였다. 그녀는 깜짝 놀라 그를 동그란 눈으로 바라봤다. 남자는 그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말을 할 줄 몰랐기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남자는 코트를 다시 잘 둘러주고는 웃음을 짓고 떠났다. 그녀는 남자에게 말이라도 걸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다시 성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성으로 돌아가 남자가 건넨 낡은 코트를 찬찬히 살피다가 그에게 새로 만든 코트를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코트는 열흘이 넘어 완성되었고 그녀는 기쁘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낡은 코트와 새로 만든 코트를 가방에 넣어 성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성 밖 광장에서 그 남자가 보이기를 기다렸다. 이때 들뜬 그녀를 발견한 마을의 한 마법사는 그녀의 상기된 두 볼이 매우 언짢았다. 그녀는 기다림 끝에 남자를 발견했고 자신이 정성스럽게 만든 코트를 건넸다. 남자는 놀라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녀의 손에 장갑을 끼워주었다. 그 후 왕비와 남자는 조금씩 친해졌고 얼음장 갔던 그녀의 손도 마음도 조금씩 따뜻해질 무렵 마녀는 사랑에 빠져 따뜻해지는 겨울왕비를 이제 그만 잠에 들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법사는 왕비와 남자가 잠든 침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검지를 두 번 저으며 말했다.
"따뜻한 겨울은 있을 수 없어 멍청한 겨울 왕비여"
왕비는 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긴 잠에 들었고
남자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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